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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쌤의 교실일기/2024 교실일기

왕사슴벌레를 도둑 맞았습니다.

by 월도쌤 2024.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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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추석 전주 왕사슴벌레를 도둑 맞았습니다. 수컷을요. 우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이라 사육세팅을 하고 합사를 시키는 것에 대해 계속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젤리를 먹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개별 사육을 하면서 먹이를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합사를 시키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출근을 해서 사슴벌레를 살펴봤더니 수컷이 사라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전 날까지만 해도 잘 살아있는 것을 보고 퇴근했거든요. 무슨 일인지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다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잠시 충동을 못 이긴 친구가 있었겠구나.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이번에 개별 사육통은 누가 열지 않는 한 절대 곤충이 스스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학기 초에 '로봇큐브' 교구가 한 번 없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땐 어쩔 도리가 없어서 전체 교육으로 주변에서 잘 찾아보고 나오면 선생님께 꼭 알리라고 말했죠. 괜히 아이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곤충이라는 생명을 건드리는 문제이기도 하고, 우리반에서 나름 아이들이 이름도 지어주고 정이 든 동물을 어떻게 했을지 겁이 나기도 했거든요. 그리고 누가 손을 대지 않은 한 벌어지기 어려운 사건이라 도난이 명확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건 저번이랑 상황이 다른데~? 처벌을 받을 수도 있어.

 

 

처벌을 언급했습니다. 저번에는 기증을 받은 교구였지만 이번에는 학교 돈으로 분양 받았기 때문에 횡령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이죠. 

 

루이가 사라져서 선생님은 너무 슬퍼

 

 

수컷의 이름 루이가  우리의 소중한 존재였던 만큼 속상함을 비치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리고 루이가 잘 지낼지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를 흘렸습니다. "우리반에서 잘 키워주면 훨씬 행복할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훔쳐갔다는 언급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로를 의심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알림장을 써서 보냈다.

 

 

하지만 사슴벌레를 가져간 친구가 마음의 불안함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알림장에는 부모님도 보란듯이 사슴벌레를 찾으면 선생님께 알리라고 적어주었고, 다같이 가방에 혹시 기어 들어갔을지도 모르니 가방을 찾아보자고 말했습니다. 사슴벌레가 돌아오면 참 좋겠지만 사실 기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돌아온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요.

 

 

집에서 키워질 수컷...ㅎ

 

 

그렇게 추석 연휴가 지나고 오늘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새로운 수컷 한마리를 분양 받아놓은 상태였습니다. 교실에서 찾았다며 루이가 돌아왔다고 할 참이었어요. 아이들은 놀라고, 루이를 갖고 있는 아이는 혼자 놀란 마음을 삼켜야 할테니까요.

 

 

선생님! 루이가 있어요!

 

 

종례 후 청소를 하던 도중에 루이가 발견되었습니다. 교실 뒤편 책상 밑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루이는 먼지가 가득한 상태로 나타났어요. 어쩜 연휴동안 계속 교실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니면 오늘 아침에 풀어졌을 지도 모르고요.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했던 친구가 사슴벌레를 다시 교실에 풀어준 것 같습니다. 그러곤 누군가 발견하기를 기다린 것이겠죠. 

 

다시 돌아온 루이

 

 

다행이었습니다. 사슴벌레에 대한 단숨한 호기심 한번으로 나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았으니까요. 최소한 이 불편한 마음을 느끼고 잘못된 선택을 돌려놓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작은 생명을 존중할 수 있는 우리반 아이의 능력에 감사했습니다.

 

 

중학교에서 그런 거 했으면 애들이 벌써 죽여버렸을지도 몰라

 

 

교실에서 사슴벌레를 키우기로 했다고 하니 어떤 중학교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애들이 벌써 갖고 놀다가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반에서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니 내심 속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충동성을 간과하고 너무 무방비하게 곤충을 놔뒀던 저를 탓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이네요. 아이들의 마음에 탄력성이 있음을 볼 수 있었거든요. 아이들을 믿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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