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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쌤의 교실일기/2023 교실일기

교사가 아이들에게 느끼는 감탄

by 월도쌤 2023.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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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교실 프로그램 SEC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점들은 아이들은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창의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반 아이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한데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아이들은 사서교사다. 처음 내가 아이들에게 사서에게 부여한 역할은 한 달에 한 번씩 책을 큐레이팅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이 다 읽은 것 같다고 판단이 들면 스스로 도서관으로 내려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다시 책을 빌려온다. 그래서 우리반에 내가  구비해 놓은 책들은 아주 부실하다. 대신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재미있는 책들 계속해서 비치되기에 아이들이 굳이 도서관을 내려가지 않고도 교실에서 책을 빌린다.

사서학생이 안내판을 만든 내용



또하나의 예를 들자면 우유당번들이다. 우유당번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유당번‘들’이라고 말한 이유는 뭐냐면 우리반에 우유당번 역할이 세개나 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끝나고 우유급식이 시작되었다. 아이들 직업을 정해준 뒤 갑자기 생긴 우유당번이라 어떻게 일을 나눠야할 지 고민이 많았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역할을 세 개로 나누는 것이었다.

  • 우유 가져오기 : 행정 공무원
  • 우유에 이름 쓰기 : 관리관
  • 우유 반납하기 : 비서


각자의 직업에 일이 추가되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물론, 선생님이 시킨 것이라 하겠지만 아이들은 교실에서 나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선생님이 아니라 맡은 역할을 담당하는 학생이 누가 우유를 안먹었는지 확인한다. 세 직업이 모두 유기적으로 우유 급식을 완벽하게 해내야 우유를 원활하게 먹을 수 있다. 각자 자신들의 행동에 영향력을 알고 있기에 아이들은 쉽게 자기 일을 내려 놓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직업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의 나‘로 구성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과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는 아이들보다 훨씬 성장 속도가 빠르다. 자기주도성, 책임감, 준법정신이 남들과 다르다.


여러분은 가진 권리가 많아요. 그러면 책임감도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직업활동의 장점이자 단점은 모든 것이 선생님의 몫이 아니라 아이들의 몫으로 옮겨간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교실의 작은 일부터 큰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 직업으로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 끝나고 우유곽을 반납하라고 했었는데 담당 학생이 학급회의 안건으로 4교시 이전에 우유 다먹기를 올렸다. 회의 결과 통과되었고, 아이들이 우유를 4교시 이전에 먹은 다음 우유곽을 점심시간에 반납했다. 얄미워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내심 기특했다. 담당 학생은 적절한 방법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아이들이 민주적으로 학급의 일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기들에게 부여된 권한을 잘 쓰고 싶어하고, 지키고 싶어한다. 아이들이다 보니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것에 실수가 많다. 집중력도 낮고, 꾸준한 끈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권한을 주었다 뺐었다를 반복한다. 우리반에서 벌칙은 학급회의를 없애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학급회의는 공부시간 이외에 쉬어가는 시간이기도 하고, 각자의 건의사항이 해소되는 시간이다. 권한이 계속 있을 땐 내가 누리는 것들이 소중한지 모른다. 나의 권한이 있다 없으면 그 소중함을 깨닫는데 실제로 다른 반에서는 없는 권한이다. 원래 없는 권한인데 있다가 없으니 아이들은 그것을 다시 찾거나 찾은 뒤 지키기 위해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내가 잘해서 구성을 잘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아이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놔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걱정하는 것은 갈등상황이 벌어졌을 때의 문제, 아이들이 실제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으로 권한을 나눠주는데 겁을 낸다. 실제로, 아이들이 자신의 권한을 감당하지 못하고 남용하거나,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하려고 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고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고 싶은 요지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잘한다는 것..’ 이런 믿음이 있다면 교실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이 훨씬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시민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아이들. 대학교, 군대에서도 부모님이 전화를 해주는 세상에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만이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혹독한 세상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도전해보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학교 속에서 작은 것부터 스스로 만들어가고, 결정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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