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유해도서 논란
채식주의자를 읽었습니다. 다행히 빨리 주문한 덕분에 얼른 배송 받고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채식주의자가 유해도서라는 공문이 내려왔을 즈음 채식주의자는 초등 수준의 책은 아니라서 몰랐지만 다양한 성교육 도서들이 유해도서로 지정되는 것을 보고, 문제의식을 저도 가졌었습니다.
성관계에 대해 언급하고, 성기를 묘사하였다고 유해도서라면 우리의 보건 교과서는 그야말로 금서가 아니겠습니까. 학부모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교육청의 태도가 참 어이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식주의자에서 나오는 선정성 논란은 매우 이해가 됩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황의 처제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형부의 관계는 충격적이고, 교육적으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권장하지 못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이해할만한 글 수준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해도서라고 지정은 갸우뚱하게 합니다. 아이들이 어차피 못 읽을 거고, 이 책을 읽을 만한 수준의 아이들은 이 내용을 충분히 걸러서 받아들일 만한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채식주의자는 시점의 전환, 시간의 전환이 매우 재밌는데 이런 문학적 장치들을 유해도서로 지정하여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되었던 몽고반점을 중학교 2학년 때 읽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어서 읽다가 덮었는데 지금 채식주의자를 읽어보니 그 내용이 이해가 됩니다. 앞 내용이 잘려 있었기 때문이죠. 선정적인 내용에 당황하였지만 제가 충분히 감당 가능한 문학적 수준이었습니다. 소설 서동요도 중학교 때 읽었습니다. 비슷한 수준의 묘사가 나옵니다. 저는 이 또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성교육 수준이 중학교에 이르러서는 성관계에 대해 명확히 가르치고, 가져야할 책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교육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걸 읽으면 좋다!가 아니라 읽어도 된다 정도는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노벨 문학상 작가의 작품을 원화로 읽을 기회를 박탈하다니요.
책에 대한 감상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책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채식주의자는 아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고기 먹기를 거부하는 영혜와 남편, 형부, 언니, 아버지 등 가족들의 갈등으로 인한 이야기들입니다. 사건은 동일하지만 챕터마다 시점을 다르게 하여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남편의 시점, 형부의 시점, 언니의 시점... 각 시점에서 다른 시점에서는 보지 못했던 사연들이 드러나고, 그로 인해 인물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나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를 생각해보게 하며, 각 인물의 시점 속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과거에서 현재로 시점을 옮겨오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내가 과거에 있는지, 현재에 있는지 헷갈리게 됩니다. 이 점이 참 흥미롭습니다.
선정적인 장면들이 있고, 다소 괴기스러운 부분들도 있습니다. 영혜는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영혜가 정말 정신 이상이 있는지 우리의 눈이 이상한 것인지 헷갈립니다. 이것은 한강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워낙 다양한 시점이 제공되는 것으로 보았을 때 저는 영혜가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후천적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영혜를 정말 미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충동적이고 폭력적이며 때로는 무기력한 인간들의 내면을 다양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읽기 전에는 되게 어려울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보다 잘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너무 겁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강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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